[인천/조희동 기자]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조선 초기 태종은 즉위하자마자 대궐 밖 문루에 북을 매달아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또는 민원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 북을 두드려 관할 관청에 알리고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백성들이 북을 두드려 북이 울리면 임금의 직속 기관인 의금부 당직청에서 민원을 접수하고 임금에게 직접 아뢰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이른바 신문고다.

신문고는 백성들이 나라에 관계된 억울한 사연이나 목숨이 경각에 걸린 범죄와 억울하게 뒤집어쓴 누명 등을 관계 당국에 알리도록 하는 민의상달의 대표적인 제도였다.
근대사회에 와서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기 전 각 행정기관에서는 ‘직소 민원실’ 제도를 운영해 왔었다. 그 제도의 근간은 신문고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 민원을 기관의 담당자가 쥐고 시간을 끌거나 직권을 남용해 고의로 민원을 반려하는 일을 막기 위해 기관장에게 직접 민원을 제기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하지만 이 제도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다. 민원을 제기하고자 직소 민원실을 방문한 시·군·구민들은 기관장을 만나기는커녕 담당 부서장도 만나기 힘들었다. 민원과 직접 연관이 있는 담당자가 민원을 접수하는 정도에 그쳐 직소 민원의 취지를 달성하지 못했다. 어지간한 뒷배가 없는 시·군민들은 일반 민원 제기와 다름없는 직소 민원 절차를 거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기 일쑤였다.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적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었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난 후 등장한 신문고는 ‘열린 단체장실’이다. 시장, 군수, 구청장을 만나기 위해 담당 직원과 먼저 협의하고 비서실에서 일정을 조율하는 ‘길고 험한’ 절차를 생략하고 시장, 군수가 그 기관의 민원실이나 시민이 드나들기 쉬운 사무실에 책상을 하나 두고 일정한 날을 정해 무작위로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제도였다.

그러나 열린 자치단체장실의 문은 항상 열려 있지만, 자치단체장을 만나는 문은 항상 닫혀 있었다. 단체장들은 ‘열린 단체장실’을 운영하는 특정한 날짜에 이미 예약된 내방객을 그곳으로 불러들여 사진을 찍고 언론에 홍보하는 절묘한 방법을 터득했다.

약속된 내방객과 시간을 끌다가 ‘열린 단체장실’의 문을 닫아버리니 일반 시민들은 단체장 만나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므로 이 제도도 단체장의 홍보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신문고의 흐름은 역사적으로 이러하다. 그런데 단체장을 직접 만나 민원을 제기하는 부류는 자고이래로 존재한다.
일반 힘없는 시민들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제법 힘깨나 쓴다는 유지들은 수시로 단체장의 방문을 열어젖힌다. 비서실에 선약을 하지 않고 불쑥 찾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소한 지켜야 할 절차와 예의도 무시하는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들일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단체장을 만나 자신의 민원과 자신의 주변 인물들이 내놓은 민원을 단체장에게 직소한다.

단체장은 그런 부류의 인물이 던지는 민원을 가볍게 여기지 못한다. 선거 때 그들이 몰아올 수 있는 표를 계산하면 내치기도 받아들이기도 난처한 올무에 걸리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특히 옹진군에는 이러한 현상의 민원이 더욱더 두드러지고 있다.
그 이유는 시, 구의 경우는 시·구민이 최소 10만에서 50만여 명에 이르기 때문에, 지역 유지들이라고 해도 지역 주민에 비하면 0.01%도 안된다. 그러나 옹진군은 인구 2만여 명에 자칭 지역 유지들이라고 하는 비중이 10%를 상회하고 있어 이들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히 높다.

따라서 시, 구의 경우는 이들의 민원을 무시하고 구민들의 의견 청취에 귀 기울이는 것이 다음 선거에 더욱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옹진군은 이들이 다음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옹진군의 각 면에는 자칭 부군수라는 작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의 위세는 눈뜨고 볼수 없을 정도로 가관이다. 꼴값을 떨고 있다는 것이다.

옹진군에는 부군수가 몇 명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단체장도 각성해야 할 일이다.
작은 감투하나만 쓰면 지역 사령관 역할을 하면서 모든 민원에 감놔라 팥놔라하는 꼴불견이 속출한다는 것.
이처럼 시장, 군수, 구청장의 비서실은 매일 이들과의 전쟁을 치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발 선약을 좀 하고 방문해 달라고 말하기에도 버거운 대상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단체장실에 일반 시민들이 한 번 방문하기에는 적지 않은 공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선출직 단체장이 겪는 불가피한 폐단이다. 그들이 들고 오는 민원은 공익에 부합하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개인의 이익과 관계된 것들이 많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힘 있는 사람이 직소 민원을 독점하는 일은 제발 끝나기 바란다. 단체장이 원만하게 군정을 추진하는 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일반 군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생각해야 한다.

군수와 친밀한 관계의 사람일수록, 권력 위에 군림하는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자중하고 양보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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